무너진 가정에도 봄은 오는가?
창 19: 30-39 / 305
들어가면서
여러분! 혹시 **'실패 박물관'**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스웨덴의 심리학자 사무엘 웨스트라는 사람이 기획한 것인데요. 기발한 제품이라고 시장에 내놓았다가 기대와는 달리 처절한 실패를 경험한 제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입니다. 이 박물관은 어느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여러 도시를 순회하면서 전시를 한다고 합니다. 2023년에는 뉴욕에서 전시회가 열렸고 2025년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습니다.
실패 박물관에는 보통 150여개의 제품이 전시 되는데 여기 전시되는 물건들은 모두가 시장에 나왔다가 제대로 팔리지 않아서 실패한 제품들입니다. 예를 들면 펩시 콜라에서 만든 크리스탈 콜라가 있습니다. 크리스탈 콜라는 콜라 특유의 색인 진한 갈색이 아니라 사이다처럼 투명한 콜라였는데요. 사람들의 생각에 콜라는 진한 갈색이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있어서인지 시장에서 완전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또 예를 들면 초록색 케첩도 출시되었다가 시장에서 찬바람을 맞고 사라졌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케첩은 빨간색이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이 외에도 할리 데이비슨이라는 오토바이 회사가 향수를 만들었는데 오토바이 회사의 기업 이미지와 향수가 너무 맞지 않아서 인기를 얻지 못했습니다. 너무 앞서 나간 제품이라든지, 기업의 고유 이미지와 너무 어울리지 않는 제품이라든지 고객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사라져간 제품들을 전시했습니다.
그런데 이 전시회에 많은 사업가들, 기업의 전문가들이 구경을 온다고 합니다. 왜 오는 걸까요? 실패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너무 앞서가도 안 되고 기존 질서를 너무 무너트려도 안 되고 기업 이미지와 너무 안 맞는 것도 안되고 열심히 공부하면서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하는 겁니다.
사실 여러분의 머리 속에도 여러분이 만든 실패 박물관이 있을 겁니다. 어릴 때 뜨거운 주전자에 손을 대어본 사람은 뜨거운 것을 잘못 만지면 큰일 난다는 걸 알고 조심하게 됩니다. 자라보고 놀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솥뚜껑도 조심하는 법이지요.
저는 오늘 본문도 그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한 마디로 말해서 완전 막장 드라마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롯의 두 딸이 자기 아버지와 동침해서 자녀를 낳았다는 이야기인데요. 많은 사람들이 거룩한 책 성경에 이런 막장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어떻게 실렸을까 궁금하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막장 드라마 같은 내용이 성경에 실리도록 허락하신 이유가 뭘까요? 사실 성경은 믿음의 영웅들을 완전무결한 사람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실수와 죄를 적나라하게 다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부족한 사람들이 결국 하나님의 손에서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도 일종의 실패 박물관 역할을 하라는 뜻이 있다고 봅니다. 이 가정은 왜 이렇게 콩가루가 되었을까? 라는 질문에 답을 하다 보면 어떻게 해야 콩가루가 안 될까? 다시 말하면 어떻게 해야 가정이 바로 설 수 있을까를 보여 주시려는 겁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렇게 무너진 가정도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면 소망이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무너진 가정에도 봄은 오는가?'**입니다. 이 제목은 일제 시대 저항 시인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패러디 한 제목입니다. 일제에게 다 빼앗기고 식민지가 된 조선 땅에 과연 봄이 올 건가를 묻는 시인의 마음 깊은 곳에 정말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간절함이 묻어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무너진 가정, 콩가루 가정에도 다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회복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 본문을 대하면 좋겠습니다.
1. 롯의 가정은 왜 무너졌을까요?
롯은 소돔이 무너질 때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사위들은 소돔이 멸망할 거라는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고 결국 소돔과 함께 멸망했습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롯과 두 딸이었습니다. 롯은 산으로 도망하라는 천사들에게 거기까지 가다가 죽을지 모르니 소알이라고 하는 작은 동네로 피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고 하나님은 그가 소알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소돔을 심판했습니다.
그런데 롯이 막상 소알에 좀 살아보더니 소알에 거주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아마도 소알 사람들도 소돔처럼 타락한 삶을 살았을 것 같습니다. 롯의 생각에 이 동네도 곧 망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롯은 딸들과 함께 산으로 올라갔고 동굴 속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딸들이 아주 끔찍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 땅에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으니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먹여서 잠들게 하고 우리가 아버지와 동침해서 후손을 퍼트리자 라고 했습니다. 결국 딸들은 그걸 실행했고 그래서 모압과 벤암미가 태어났는데 이 사람들이 모압과 암몬 자손의 조상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 그렇다면 어쩌다가 롯의 가정은 이렇게 황폐한 콩가루 집안이 되었을까요?
1) 우선 순위의 혼동
제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롯의 우선 순위가 거꾸로 되어 있었다는 겁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헤어질 때 아브라함이 롯에게 먼저 가고 싶은 곳을 고르라고 했습니다. 그때 롯은 요단 들을 선택했습니다. 롯이 요단 들을 보았을 때 그 곳에는 물이 넉넉했기 때문에 마치 에덴 동산 같았고 애굽 같았다고 했습니다. 물이 넉넉하니 농사 짓기도 좋을 거고 목축업을 하기에도 더 없이 좋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롯이 요단 들을 택한 이유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살기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거기서 롯은 바로 옆에 있는 소돔 성으로 옮겨 갔습니다. 소돔이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보였던 거죠.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롯은 성문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당시 성문은 도시의 중심이었습니다. 그곳은 재판이 이루어지고 중요한 결정과 회의가 이루어지는 곳이었습니다. 롯이 성문 앞에 앉아 있었다는 말은 그 동네에서 공적인 역할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소돔에서 힘 꾀나 쓰는 지도층의 자리에 올라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요즘 우리 식으로 이야기 하면 롯은 성공을 향해서 달린 사람입니다. 지방에서 경기도로 경기도에서 서울로 서울 중에서도 학군 좋은 곳으로 계속 달려가서 그 동네에서도 중요한 자리에 가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기 좋은 곳으로 점점 나아가는 동안 그는 하나님으로부터는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사실 소돔은 가나안 땅에서 제일 동쪽 끝입니다. 한 발만 더 나아가면 이방 땅으로 가는 겁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겨우 발만 걸치고 있었고 약속의 땅과 이방 땅의 경계선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결국 롯의 후손들은 가나안 땅을 벗어나 요단강 동쪽 편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롯의 이야기를 보십시오. 그는 그의 사위들에게도, 그의 아내에게도 아무런 선한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그의 딸들의 행동을 보면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느라 자녀들에게 제대로 신앙을 심어주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좀 더 풍요로운 삶을 꿈 꾸고 학군 좋은 곳을 찾아가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선 순위입니다. 어디 가야 좀 더 살기 좋을까? 어디 가야 우리 아이 공부를 잘 시킬 수 있을까? 어디 가야 집값이 팍팍 오를까 이걸 생각하는 동안 하나님과의 관계는 끄트머리에 겨우 발만 걸치고 있는 거죠. 그러다가 한 발만 더 나아가면 하나님을 떠날 수 있게 되는 거죠.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란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교수님이 학생들 앞에서 뭔가를 보여주면서 질문을 합니다. 우선 큰 유리 상자 안에 큰 돌을 넣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물어봅니다. 여러분! 이 상자가 꽉 찼습니까? 아니면 뭔가를 더 넣을 수 있습니까? 학생들이 대답합니다. 좀 더 작은 돌을 넣으면 더 들어갈 것 같습니다. 작은 돌을 넣었습니다. 이제 꽉 찼나요? 아뇨 더 작은 돌을 넣으면 그 사이로 들어갈 것 같습니다. 그래요. 더 작은 돌을 넣을게요. 이제 꽉 찼나요? 아뇨. 이제 모래를 넣으면 더 들어갈 것 같습니다. 모래를 넣고 흔들었다니 더 들어갔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수님이 물어보았습니다. 여러분! 이 실험을 통해서 무얼 배웠습니까? 예. 아무리 짜투리 시간이라도 잘 찾아보면 얼마든지 더 쓸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때 교수님이 대답했습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큰 돌을 먼저 놓아야 한다는 겁니다. 모래를 먼저 넣고 맨 나중에 큰 돌을 넣었다면 다 넣을 수 없었을 겁니다. 더 중요한 것, 더 소중한 것을 먼저 결정하고 그 다음에 다른 것을 결정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은 몇 번째이십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에게 우선순위를 두고 살면서 자녀들에게 그런 신앙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고 3 자녀에게 대학 입시보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 알려주어야 합니다.
롯과 대조되는 것이 아브라함의 삶입니다. 창 18: 18-19 같이 읽어봅시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실 때 아브라함이 그 자녀들과 가족들에게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의와 공도를 행하도록 가르치게 하려고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이 이삭과 야곱에게 계속 흘러가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실수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정말 잘한 것이 있다면 아내와 자여손들에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을 이어준 것일 겁니다. 사실 자녀들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믿음의 반석 위에 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녀들 앞에서 걸어갈 때 하나님을 1순위로 모시고 사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걸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께 계속 구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자녀들의 마음을 붙들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2) 소돔 문화에 오염
두 번째 롯의 문제는 소돔의 타락한 문화에 오염되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 말씀에 보면 롯이 천사들을 내놓으라고 소리 치는 소돔 사람들에게 대신 내 딸을 내어 줄테니까 너희 좋을 대로 해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천사들을 성폭행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대신 내 딸을 내 줄테니까 너희 좋을 대로 해라고 하는 롯의 태도는 한 마디로 경악을 금치 못할 태도입니다. 그는 타락한 도시에 살면서 그런 게 별 게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던 겁니다. 한 마디로 소돔의 타락한 문화에 오염되었던 겁니다.
오늘 본문 31절을 보십시오. 롯의 큰 딸이 작은 딸에게 뭐라고 하는지 같이 읽어봅시다.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롯의 큰 딸이 아버지와 동침하자고 동생에게 제안하면서 하는 말이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사라가 결국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자녀를 낳았던 것과는 달리 이들은 이 세상의 풍속을 따라서는 우리가 결혼할 상대가 없으니 아버지랑 동침하자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타락한 문화가 강물처럼 밀려올 때 그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노를 저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자동으로 떠내려 갑니다. 굳이 떠내려 가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의도적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하는 세상의 타락한 문화에 그냥 떠내려 가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 청소녀들의 대화를 들어보십시오. 길 가다가 청소년들이 같이 이야기 하면서 가는데 따라가다 보면 그들의 대화가 모두 욕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분이 나쁜데 그냥 나쁜 게 아니라 **기분 나쁘다고 합니다. 심지어 기분이 좋은데도 **기분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상대방을 깎아내립니다. 못 생겨 가지고… 야 돼지. 그렇다면 거슬러 올라간다는 건 어떤 걸까요? 단지 욕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내 입에서 감사의 찬송이 나오고 주위 사람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게 우리의 말이 되어야 합니다. 요즘은 너무 그렇게 살면 범생이라고 놀립니다. 놀림 당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고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성적으로 타락한 문화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나는 바람 피우지 않을 거에요. 나쁜 생각 안 할 거에요. 굳게 다짐하면서 버티는 게 아니라 자기 아내를 온 맘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진심으로 남편을 존경해 주어야 합니다. 서로의 필요를 도와줄 수 있는 만큼 도와주고 말 한 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잡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세상 사람들 따라가지 말고 사랑을 더 진하게 고백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힘 주시는 대로 부부 관계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랑하고 존경하면서 사는 게 힘들다고 포기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본인이나 배우자가 세상의 타락한 문화에 떠내려 가게 됩니다.
2. 무너진 가정의 결과
롯과 그의 딸들 사이에서 낳은 자녀가 결국에는 모압과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됩니다. 결국 그들은 언약 백성 바깥으로 나가게 되었고 하나님 없는 불쌍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후예들은 어땠을까요? 창세기를 읽어보면 아브라함의 후예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르우벤은 서모와 간음을 행했습니다. 유다는 며느리와 동침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 와중에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지만 그들의 가정 역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더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 출애굽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싯딤에 이르렀을 때 모압 여인들이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해서 간음하는 사건이 생깁니다. 그들은 간음한 걸로 끝나지 않았고 우상 숭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깨어진 가정이 회복되지 않으면 결국 이렇게까지 됩니다. 악한 세상의 문화에 동화된 부모가 자녀를 낳고 그 자녀가 또 그런 삶을 살다가 자녀를 낳고..... 반복하다 보니 성적 타락이 너무 심해서 그게 별로 심각한 문제로 인식 되지도 않았던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약간 나았을지 모르지만 그들 역시 타락한 세상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결국 한 두 사람이 아니고 수많은 사람이 간음을 행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24,000명이 전염병으로 죽습니다. 그러다가 비느하스가 창을 들고 간음 현장에 들어가 고스비라는 미디안 족장의 딸과 함께 간음하던 두 사람을 창으로 찔러 죽이자 전염병이 멈추었습니다.
이런 역사를 생각하면 우리에게 깊은 절망이 몰려옵니다. 콩가루 가정의 딸들을 통해서 태어난 아들들의 후예와 그래도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후손들이 결국에는 같이 간음을 행하다가 염병에 죽고 창에 찔려 죽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비느하스를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시는데 그게 창에 찔려 죽는 겁니다.
하나님을 떠난 롯의 후예들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믿음으로 살려고 몸부림쳤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앞에 서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부모의 죄를 자녀가 답습하면서 점점 더 죄가 깊어져 가고 가정은 더욱 붕괴되고 있는데 과연 이런 가정이 회복될 수 있을까? 아버지의 음주, 폭력, 어머니의 외도, 부모님의 이혼, 상처 입은 자녀들, 본인의 이혼, 아들의 가출 온갖 상처로 얼룩진 우리들의 가정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심판하시면서 끝난다면 우리 가정의 결론도 뻔하지 않을까요?
3. 무너진 가정에도 봄은 오는가?
결국 우리는 절망적인 마음으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무너진 가정에도 봄은 오는가?
이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는 또 다른 모압 여인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녀는 바로 룻입니다. 모압의 젊은 과부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 이스라엘 땅으로 왔다가 마음씨 좋은 아저씨 보아스와 재혼하게 됩니다. 그들 사이에서 오벳이란 아들이 태어났고 그 아들이 다윗의 할아버지가 됩니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십니다.
인간들이 가정을 콩가루로 만들고 그 나쁜 영향을 후손들에게 물려줌으로써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가정이 될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깨어진 가정에서 보아스와 룻을 구별하시고 그 후손으로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죄악을 짊어지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비느하스가 창을 찔러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셨다면 예수님께서 창에 찔리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 당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면 깨어진 우리 가정들을 위해서 창에 찔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생명을 내어 주신 예수님의 그 말할 수 없는 사랑에 우리가 잠기는 것입니다. 주님의 그 은혜와 사랑이 우리의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해 주실 때 우리도 우리에게 상처 준 그 사람을 용서하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그 사랑에 우리가 잠길 때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그 은혜를 가족들에게 흘려 보낼 수 있습니다.
결론
예수님께서 처음 행하신 표적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바뀌듯이 상처로 얼룩진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스도의 은혜가 흘러갈 때 지옥 같았던 가정이 바뀌어 천국이 될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의 그 사랑이 우리를 적실 때 무너진 가정에도 봄은 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이번에 우리 교회에서 아버지 학교를 개최합니다. 아버지들이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아버지의 자리를 회복할 때 물이 포도주가 되듯이 우리 가정이 천국으로 바뀌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 중에서 아버지 학교를 수료하신 분들은 자신의 최종 학력이 아버지 학교인 것을 가장 자랑스러워하십니다. 우리 교회 모든 남자분들이 아버지 학교 동문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