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끗 차이의 신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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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5장 1~11절(신약 193쪽) |
1 아나니아라하는사람이그의아내삽비라와더불어소유를팔아
2 그값에서얼마를감추매그아내도알더라얼마만가져다가사도들의발앞에두니
3 베드로가이르되아나니아야어찌하여사탄이네마음에가득하여네가성령을속이고땅값얼마를감추었느냐
4 땅이그대로있을때에는네땅이아니며판후에도네마음대로할수가없더냐어찌하여이일을네마음에두었느냐사람에게거짓말한것이아니요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이말을듣고엎드러져혼이떠나니이일을듣는사람이다크게두려워하더라
6 젊은사람들이일어나시신을싸서메고나가장사하니라
7 세시간쯤지나그의아내가그일어난일을알지못하고들어오니
8 베드로가이르되그땅판값이이것뿐이냐내게말하라하니이르되예이것뿐이라하더라
9 베드로가이르되너희가어찌함께꾀하여주의영을시험하려하느냐보라네남편을장사하고오는사람들의발이문앞에이르렀으니또너를메어내가리라하니
10 곧그가베드로의발앞에엎드러져혼이떠나는지라젊은사람들이들어와죽은것을보고메어다가그의남편곁에장사하니
11 온교회와이일을듣는사람들이다크게두려워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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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도입 및 배경
1986년 1월 28일, 미국 방송사 CNN의 생중계로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가 우주를 향해 솟아올랐습니다. 그런데 발사한지 단 73초 만에 우주왕복선은 공중에서 산산조각이 폭발해버렸습니다. 이 참사를 조사해보니, 수십조 원의 예산과 수백만 개의 첨단 부품과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우주선이었지만 놀랍게도 로켓 이음새에 들어가는 지름 7mm 남짓의 얇은 고무 패킹 ‘오링’ 하나가 끊어져 그 틈으로 가스가 새는 바람에 그 어마어마하던 우주선이 폭발해버렸다고 합니다. 아무리 99.9%의 부품이 완벽하게 제 기능을 하고 있었더라도 단 0.1%의 그 작은 틈새 하나때문에 우주선과 이 우주 프로젝트는 단 한 순간에 파괴되어 버린 것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사도행전의 말씀은 우리 신앙에도 이와 같은 ‘치명적인 0.1%의 틈새’가 있을 수 있음을 한 사건을 통해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 안에 미세한 불순물을 걸러내고 순전한 복음을 굳건히 세워가는 시간이 되길 기도합니다.
1.복음 공동체의 모습
먼저 보아야 할 것은 오늘 본문 앞의 4장 이야기 입니다. 4장에서는 성령강림 사건 이후에 초대교회의 은혜롭고 성령충만한 완벽한 공동체의 모습이 소개되었습니다. 그 특징 중 하나는, ‘은혜 안에서의 자발적인 선순환’이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함께 4장 32절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32 믿는무리가한마음과한뜻이되어모든물건을서로통용하고자기재물을조금이라도자기것이라하는이가하나도없더라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경험한 공동체는 누구의 강요나 부담도 아닌, 복음 안에서 기쁨으로 서로의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물을 이웃들과 나누고 서로 도우며 은혜를 끊임없이 흘려보냈습니다. 이 중에 대표적인 인물로 소개된 자가‘바나바’였습니다. 바나바는 자신의 밭을 팔아 공동체와 이웃을 위해 기꺼이 내어놓으며 자신이 받은 은혜에 대한 자발적이고 순수한 반응으로 공동체를 섬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선순환의 움직임에는 온 성도 동참하며 ‘자발적인 은혜의 선순환과 확장’을 이뤄내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완벽한 공동체로 서가게 된 것입니다.
2. 종교 공동체의 모습 : 아나니아와 삽비라
그리고 오늘 5장에서 이 공동체 내의 한 부부가 소개 되는데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였습니다. 이 부부 또한 바나바처럼 자신의 소유를 팔아 그것을 사도들 앞에 가져왔습니다. 엄청난 헌신이며 섬김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나바 때와는 다른 ‘작은 한끗의 차이’로 인해 그렇게 완벽했던 공동체 내에 큰 수고로움과 두려움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 부부는 바나바와 성도들처럼 은혜에 의한 자발적인 헌신이 아닌 ‘자신을 위해’ 자신의 소유를 내어놓았던 것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은혜의 감격으로 드러난 반응으로 드린 섬김’이 최종 목적이 아닌… 이 ‘섬김’이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얻고자 했던 ‘종교적 욕심’이 그 안에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한 끗 차이’라는 표현처럼 너무나도 미세한 차이였습니다.
‘한 끗’이라는 말의 어원을 찾아보면, ‘민속놀이 투전과 같은 게임에서 점수를 세는 가장 작은 단위’로 이 1점과 같은 아주 미세하고 작은 차이를 의미하는 관용어로 우리의 일상 속에 자주 쓰이기도 하죠. 그런데… 그 1점의 차이라는 한 끗 차이가 아주 작아 보일지 몰라도 너무나도 다른 결과를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 미세한 격차 때문에 누군가는 그 판의 모든 돈을 얻기도 하고, 누군가는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한 점으로 인해 ‘게임의 승패’는 단 한 순간에 뒤바뀌어 버리기도 합니다.
즉,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이 한 끗 차이 밖에 안되는 신앙의 갈림길 앞에서 넘어져 너무나 상반된 결과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부부의 마음 속에 숨어 있던 그 미세한 ‘한 끗’의 불순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이 부부의 모습을 보면, 겉으로는 통 크게 자신의 소유를 내어드리는 척했지만 그 마음에는 바나바보다 자신이 더 믿음이 좋아 보이고 싶은 비교의식과 우월감이 똬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섬김 안에 은혜에 대한 감격과 자발적인 헌신보다는 이 모습을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박수받고 싶은 ‘인정’, ‘드러나길 원하는 교만’이 앞섰던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공동체의 섬김을 통해 영광 받으실 하나님보다 자신의 행위로서 자신이 받을 영광에 더 마음을 두고 있었던 것이죠. 결국 ‘기쁜 소식에 대한 반응’이 그를 움직였던 것이 아닌, ‘종교적인 열심으로의 보상’이 결국엔 그 부부에게 일종의 포장지가 되어 그들의 위선과 자랑을 헌신 속에 감추어두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이 부부의 그 한 끗 차이의 신앙을 눈여겨 보았던 것입니다. 함께 본문 3절을 읽겠습니다.
3 베드로가이르되아나니아야어찌하여사탄이네마음에가득하여네가성령을속이고땅값얼마를감추었느냐
여호수아 7장을 보면 여리고 성이 함락 된 후,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져야 할 전리품을 몰래 자기 장막에 '도둑질하여 숨겼던’ 아간이라는 자가 등장합니다. 이 아간의 도둑질과 똑같은 모습이 오늘 이 부부의 모습이었고 베드로는 이 죄된 ‘마음’을 경고한 것입니다.
여러분, 아나니아가 자신의 전체 재산 중에 자신의 것으로 일부의 금액을 빼놓은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예를 들자면, 자신의 재산을 팔아 100만원이 생겼는데 생활비도 보태야 하고, 카드 값도 갚아야 해서 고민고민하다가 결국엔 50만원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게 오늘 말씀과 베드로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들의 문제는, 100만원 중에 120만원! 더 드렸죠? 설령! 하나님께 더 많은 것을 드렸어도… 그 드림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온전히 받으셔야 할 영광을 가로채어서 자신의 영광을 삼았던 것이 진짜 문제였던 것입니다. ‘섬김 그리고 헌신’이라는 포장지 속에 “우리 부부는 이 정도나 할 수 있어!”, “다들 우리 믿음이 크다고 생각하겠지?”하는 우월감과 비교의식, 인정 욕구를 담아서 스리슬쩍…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들의 영광으로 챙기려 했던 그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하나님께만 올려드려야 할 영광을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드렸지만, 그 영광을 다시 자기 손으로 가져오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손은 사도의 발 앞을 향했지만, 그들의 진짜 마음은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과 칭찬을 갈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참 미묘합니다. 이 작은 순간, 작은 차이가 ‘복음에 대한 반응’을 자기 영광을 위한 ‘종교적 행위와 열심’으로 변질시켜 버리고 만 것입니다.
3. 한 끗 차이의 신앙 : 은혜의 공동체를 향하여
우리 또한 신앙생활에서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자리와 횟수! 또는 그 직분과 양!이라는 ‘열심이라는 포장지’에 시선과 중심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느새 봉사와 섬김 속에 섞여 들어오는 ‘내 열심’이라는 불순물들을 눈치채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바쁜중데도 나 이렇게 잘했는데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가 없네?”, “그래도 내가 간식 다 준비했는데 맛있다고 안하네?”, “그래도 더운 날씨 밖에 있으면 감사인사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나?” 하며 어느샌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시작했으나, 조금씩 내가 영광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며 내가 영광의 자리 한 켠을 가져가보려 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이 한 끗의 지점에서 ‘종교’와 ‘복음’은 갈라집니다. 겉보기에는 똑같은 헌신과 봉사처럼 보이지만 이 둘은 절대 섞일 수 없고 양립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알아챌 수 있을까요? 핵심은 바로 그 자리에 “누가 남아 있는가” 입니다. 종교는 “내가 이렇게 했으니 하나님도, 사람들도 나를 알아주어야 한다”고 하며 “내가” 그 자리에 남게 됩니다. 하지만 복음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받아들여졌고 사랑받았기 때문에 나를 위함이 아닌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섬긴다”고 고백하게 하며 “은혜로 시작하여 그 마지막도 은혜가 남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섬기다 보면,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때론 아쉬운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이 섬김의 자리 다시 십자가 앞으로 가지고 나아가며 다시 은혜 앞에, 말씀 앞에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이 섬김의 영광을 제가 가지려 했습니다. 다시 주님의 은혜로 섬기게 해주십시오.”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부족하고 흔들리는 와중에도 다시 은혜의 섬김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이 연약하고 흔들리는 내 자신마저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십자가의 사랑 그 은혜’ 때문입니다. 그 주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굳게 붙들고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이 사실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맡겨진 삶과 그 섬김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복음의 힘!”입니다. 이제 그 주님을 붙잡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나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의 이야기가 공동체 내의 헌신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조금 더 우리의 믿음의 눈을 넓힌다면 이 예배당과 신앙 공동체를 뛰어넘어 개인 삶 속에서 우리 가정, 다락, 또는 우리 직장/사업장이 훨씬 더 다양한 부분에서 하나님 나라의 선순환의 고리를 이룰 수 있고 또 섬겨갈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이야기이지만 잠시 나누며 우리 은혜의동산교회 성도님들도 어떻게 은혜의 선순환으로 섬길 수 있을까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2년 전, 이사를 하고 집들이를 하면서 감사하게도 선물과 먹거리가 참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저랑 아내, 그리고 둘째 주찬이 세 명으론 유통기한 내에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먹어도 다 먹거나 쓸 수 없는 양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상의를 해서 이것을 아파트 입주민 톡에 올려 무료 나눔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웃 주민 분들과 인사도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저희의 나눔을 받아가시면서 저희에게 자신의 것을 다시 나누어 주시면서 서로가 풍성하게 나누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누기 위해 물건을 톡에 올렸지만 그 물건을 가져가지 않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져가지 않았다고 해서 제가 “왜! 내가 나눈다는거 안 가져가!” 하면서 기분 나빴을까요? 전혀요. 가져가지 않더라도 오히려 제가 받은 감사함이 크기에 전혀 게의치 않았습니다.
반대로, 이러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과일 드실 분 가져가세요’ 라고 올렸는데 한 분이 뒤늦게 오셔서 가져가질 못하셨어요. 그런데 그 분이 “왜! 내꺼 없어!!?”하며 기분 나빠하셨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져온 과자를 저희에게 그냥 주시면서 “이렇게 함께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하다”며 그냥 주시고 가셨습니다. 은혜를 나누는 자나, 받는 자나 모두가 함께 감사하는 것이죠.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00%와 99.9%는 단 0.1%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99.9%는 이 0.1%의 차이 때문에 100% 똑같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씀처럼 저와 여러분 모두 날마다 은혜의 감격 가운데 살아가는 것 뿐 아니라, 매순간 내 삶에 0.1%의 나의 우상과 욕심이 은혜의 감격을 점차점차 변질시키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길 원합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이 은혜의 감격을 날마다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사탄은 언제나 그 모습과 그 방법을 바꾸어 어떻게든 우리를 무너뜨리려 공격합니다. 또 삶의 어려움과 위기 앞에 그렇게 어제까지 담대하던 믿음과 열정도 식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해야 합니까? 날마다 우리 가운데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충만함으로 끊임없이 은혜 앞에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믿음의 공동체가 외부적으로는 종교적인 박해와 또 내부적으론 오늘과 같은 문제 속에서도 그 중심을 잃지 않고 날마다 믿는 자들이 더하며 흥황할 수 있었던 것은… 사도들을 비롯한 온 성도들이 말씀과 기도, 성령충만함으로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서로가 서로를 지키고, 서로가 서로를 섬기며 나아갔기에 이 공동체를 세워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공동체가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 그리고 다락과 마을 이 은혜의동산교회가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4. 결론 및 적용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 했던 내 종교적 열심과 증명을 내려놓고… 나의 모든 연약함 채워주시고 나를 십자가 복음으로 증명케 해주신 예수 그리스도 그 은혜를 따라 살아가며 그 은혜를 흘려보내는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특별히, 곧 9월이 되며 올 해의 하반기을 맞이합니다. 새롭게 시작하고 재개되는 특새와 각 다락방과 양육 또 하반기의 모든 모임과 훈련을 통해 거룩한 성령의 전으로 굳건하게 세워지는 성도님들의 삶과 일상이 되길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부르신만큼 온 공동체가 함께 하나가 되어 함께 굳건히 세워가는 은혜의동산 공동체가 되길 간절히 기도하고 축원합니다. 함께 찬양드리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