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
창 35: 22-36: 43
들어가면서: 장례식
아마 여러분도 집안에 연세 많으신 분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참석해 보신 경험이 있을 겁니다.보통 이런 장례식에 가보면 굉장히 많은 친척들이 모이게 됩니다. 보통은 아래 위로 3대가 같이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죠. 오랫동안 못 만났던 사촌들, 삼촌, 이모, 고모들, 그리고 조카들까지 만나게 됩니다.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에 보통 서로의 근황들을 묻고 이야기하게 되는데, 이야기 하다 보면 묘하게 가족 간에 비교가 될 때가 있습니다.
큰 삼촌 집 자녀들은 명문 대학에 진학하고 대기업에 취직했다고 하는데 우리 집 애들은 대학에 낙방하고 몇 년째 취직이 안되어서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누구는 이전에 산 집이 올라서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집이 없어서 전세 살고 있다고 합시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긴 하지만 평소에는 잘 못 느꼈던 묘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올 겁니다. 좀 부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주로 족보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창세기에는 여러 번 족보가 나오는데 족보는 앞의 이야기가 끝나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때 주로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삭의 장례식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장례식 이야기를 가운데 끼워 두고 이삭의 두 아들인 야곱의 자손들 족보와 에서 자손들의 족보가 앞 뒤로 나옵니다. 마치 장례식에 두 가족이 모여 있고 이 두 가족의 상황을 서로 비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물론 여기 나오는 여러 사람이 모두 장례식에 참석한 건 아닙니다. 훨씬 후대 사람의 이름도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치 창세기의 저자가 두 집안을 비교시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1. 이삭의 죽음
1) 평안한 삶
우선 장례식의 이야기를 좀 해봅시다. 이삭이 180세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병이 들었거나 사고가 난 건 아니었고 늙어 기운이 다해 평안하게 죽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창세기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4명의 족장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이야기가 가장 짧은 사람이 이삭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야기거리가 적다는 건 본인의 입장에서 그렇게 나쁜 건 아닙니다. 자기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열 권도 넘게 쓸 수 있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오신 분들이십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삶의 기반을 잘 잡아 두었고 이스마엘은 진작에 쫓겨났기 때문에 하나 남은 아들로서 그 모든 유산을 물려 받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경제적으로 굉장히 풍요로웠습니다. 게다가 이삭의 성품이 누구랑 싸우고 부딪히기 보다 자기가 손해 보면서도 양보하는 사람이었기에 드라마틱한 복수 열전 같은 건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4명의 족장 중 가장 평안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 아쉬운 43년
그런데 좀 생각해 볼 것은 그가 곧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마지막으로 에서를 축복하려고 하다가 야곱에게 축복을 해 줄 때가 여러 본문을 참고해서 추정해 보면 137세 정도 되었을 때였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가 실제로 죽은 건 180세였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생각했던 것 보다 약 43년 정도를 더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 43년 동안 특별한 이야기가 안 나오는 걸로 봐서 비교적 평안한 삶을 살았을 것 같습니다만 좀 아쉬운 것은 그가 죽을 거라고 생각한 시간과 실제로 죽은 시간 사이에 무려 43년이란 시간의 차이가 있었다는 겁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인생의 마지막 시간과 하나님께서 정하신 마지막 시간이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이삭의 이야기를 보면서 혹시 어르신들 중에서 이제 나이도 많고 하나님 나라 갈 날도 얼마 안 남은 것 같아서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는 분들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케냐 사람 키마니 마루게라는 분은 성경을 읽기 위해서 84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고 합니다. 자기 손주 두 명이 다니는 학교에 입학해서 열심히 공부했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에 어르신들이 많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우리를 부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너무 늦은 나이는 없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러분의 남은 생애 동안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하나님 앞으로 한 걸음씩 더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을 하나님 앞에 든든히 세우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길 원합니다. 그리고 내일 하나님이 부르시더라도 오늘 최선을 다해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3) 화해하는 장례식
이삭의 장례식에 대해서 본문에서는 짧게 소개했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상당히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동생을 죽이고 싶어 했던 에서와 평생 형을 피해 다니며 살던 야곱이 같이 장례를 치르고 있습니다. 창세기 33장에서 극적으로 화해했던 두 사람의 화해가 제대로 된 화해였음을 보여 주는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사실 어떤 장례식은 가족들이 싸우고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산을 더 갖기 위해서, 장례 비용을 누가 얼마나 낼 건지, 부조금 들어온 걸 어떻게 나눌 건지 가지고 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장례식은 가족들이 더욱 단단하게 하나 되고 서로를 위로하고 축복하는 자리가 됩니다. 부모님이 못다한 일들을 자녀들이 감당하자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장례가 그런 장례였습니다. 철천지원수 같았던 두 형제가 화해하고 아름답게 장례를 치릅니다. 꼭 장례식 뿐만 아니라 집안에 대소사가 있을 때 그걸 서로 하나 되는 기회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해 시키시고 우리를 하나 되게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오신 주님을 믿는 사람, 그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자기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모두를 하나 되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 족보 비교
1) 야곱의 족보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런 장례식 이야기가 가운데 들어 있고 앞 뒤로 야곱의 집과 에서의 집 족보가 나옵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두 집안이 선명하게 비교되는 족보입니다. 먼저 야곱의 집 족보가 어떠했는지 봅시다. 야곱의 집 족보가 시작되는 첫머리가 35: 22절인데요. 한 번 읽어봅시다.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 둘이라.” 야곱의 아들은 열 둘이라는 문장 바로 앞에 정말 가문의 수치이고 숨기고 싶은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첩과 동침했다는 이야기를 한 다음에 야곱의 아들이 열 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23절부터 26절까지 야곱의 12 아들이 소개됩니다. 창세기를 읽고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다 압니다. 첫째 르우벤이 새어머니와 관계를 맺는 패륜적 행동을 했고 그 이전에는 둘째와 셋째가 억울한 일을 당한 동생을 대신해서 복수한다는 명분으로 엄청 많은 사람을 죽이고 가정에 위기를 자초했다는 걸 압니다.
2) 에서의 족보
야곱의 열 두 아들을 소개한 다음에 36장에 에서의 족보가 나옵니다. 우선 엄청 많은 이름이 나옵니다. 야곱 집에서는 12 아들 이름만 나오는데 에서의 족보를 보면 아들의 이름 뿐만 아니라 손자, 그리고 족장들의 이름, 나중에는 왕들의 이름까지 나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족보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36: 1에 보면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라고 했고 36: 9에 보면 ‘세일 산에 있는 에돔 족속의 조상 에서의 족보는 이러하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족보를 ‘톨레도트’라고 하는데 창세기의 중요한 흐름이 바뀔 때마다 이 족보가 나옵니다.
그런데 37: 2에 가면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그리고 바로 이어서 요셉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다시 말하면 35장에 나오는 12아들의 이름이 끝이 아니고 계속 이어지는 거죠. 그런데 다시 이어지는 첫 시작이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가 유다가 며느리와 잠자리를 해서 쌍둥이를 낳는 이야기입니다.
3) 부끄러운 족보와 자랑스러운 족보
만약 여러분이 야곱의 아들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오랜 만에 만난 친척들이 근황을물어 본다고 합시다. 근데 보자 그 때 여자 동생이 있지 않았나? 그래 맞다. 디나! 디나는 잘 있나? 아 예. 좀 안 좋은 일이 있긴 했는데 지금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랬구나. 큰 형 르우벤은 어떻게 지내나? 차마 새 어머니와 이상한 짓을 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 그냥 뭉그적거리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 다음이 레위와 시므온이지? 그 형들은 어떻게 지내? 살인하고 피해서 도망 갔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다음이 유다지? 유다 형이 며느리와 관계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본문을 읽는 후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도 비슷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에서의 족보가 이어집니다. 에서는 나라를 세우고 왕까지 등장하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요셉이 나오는데 형들에 의해서 노예로 팔려갑니다. 한쪽은 왕이 나오는데 이스라엘 쪽에는 노예가 되고 전과자가 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에서의 집안은 뭔가 잘 풀리고 야곱의 집안은 답이 없는 집처럼 보입니다.
3. 하나님의 언약
1) 언약 안에 머물렀던 야곱의 후손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왜 그들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가감 없이 다 성경에 담게 하셨을까요? 만약 여러분 가문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든다면 주로 좋은 이야기만 담고 싶지 않겠습니까? 정말 부끄러운 이야기는 좀 빼고 책을 만들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끄러운 이야기를 다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이 부끄러운 이야기를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첩과 간통한 르우벤을 족보에서 지우지 않습니다. 살인과 폭력을 저지른 시므온과 레위를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 명단에 남겨 둡니다. 죄가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그들의 부족함과 죄악됨이 하나님의 언약을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의 훌륭한 삶 때문에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놀라운 위로가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고 있기에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몇 가지 약속을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을 주겠다, 그리고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그리고 너에게 복을 주고 너의 후손을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하겠다. 이미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아브라함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가나안 땅, 이스라엘 백성들이 중심이 되지만 예수님이 오신 이후 이제 그 경계는 허물어지고 모든 민족,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어 주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는 이 언약의 바톤을 누군가가 계속 전해주면서 후대로 넘어가야 하는데,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으로 넘어왔습니다. 그리고 이삭 다음 장자인 에서 대신에 야곱에게 이 바톤이 넘어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2) 언약에서 멀어져간 에서의 후손
오늘 본문을 보면 에서도 꽤 큰 민족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33장에서 야곱과 이야기 하는 걸 보면 경제적으로도 꽤 잘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야곱이 예물로 준 것까지 합치면 꽤 큰 부자였을 거라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36: 31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리던 왕들은 이러하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만약에 출애굽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본문을 읽었다면 마음이 복잡해졌을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왕이 없었고 제대로 나라로 세워지지도 않았는데 에서의 후손인 에돔은 이미 한 나라로 든든히 세워졌고 왕들의 이름이 8 명이나 나오는 걸로 봐서 훨씬 더 안정된 나라를 이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출애굽해서 여전히 광야를 떠돌아 다니고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주겠다는 약속이 이루어지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에돔에 비해서 속도가 훨씬 더 느립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빨리 뭔가 응답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우리 생각과 매우 다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빨리 들어주지 않는 것 같아서 실망될 때마다 우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서 일하고 계신 하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주 성공적으로 나라를 이루어가는 에서의 후손들을 보면 부러운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36: 6-8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
에서는 가나안 땅을 떠나 세일산으로 갑니다. 세일산은 요단강 동쪽에 있는 곳이고 나중에 그곳을 중심으로 에돔이라나는 나라가 생깁니다. 에서의 삶을 돌아보면 에서는 야곱이 중요하게 생각하던 것을 소홀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 첫번째 이야기가 장자권 이야기입니다.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버렸습니다. 반면 야곱은 좀 비열한 모습을 보이긴 합니다만 장자권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갖고 싶어합니다. 이건 단지 장자가 되어 많은 재산을 갖겠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대를 잇는 언약의 후손으로서 세워 주시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머물게 됩니다. 그래서 36장에서 에서의 족보가 끝나자 마자 37: 1에 보면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반면에 에서는 가나안 땅을 벗어나 세일산 쪽으로 이동합니다. 물론 두 사람이 같이 머물기에는 너무 좁아서 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가나안 땅 안에서 이동하지 않고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땅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단지 그는 자기 가족들이 목축업을 하기 좋은 보다 넓은 지역을 찾다가 세일산 쪽으로 간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면 에서의 가족이 훨씬 더 풍요로운 삶을 살고 많은 자손들이 있고 그 중에 왕이 나오는 멋진 족보를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큰 민족을 이루고 부자가 되었을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약속에서는 점점 멀어져가고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반면에 성경은 문제가 많고 변변치 않아 보였던 야곱의 후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세상을 새롭게 하는 것을 차근차근 보여주고 있습니다. 확실히 비교됩니다. 형네 집은 잘 되었고 동생네 집은 뭔가 어수선하고 엉망진창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수선한 야곱의 집을 통해 언약을 이어가십니다.
4. 진정한 복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무얼 이루었느냐가 아닙니다. 비록 내가 지금 다른 사람에 비해 가난하고 가진 것도 없어도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사는 그 사람이 가장 복된 사람이고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 사는 사람이 가장 복된 삶이라는 겁니다.
시편 17편 14-15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물려 주는 자니이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다윗 주위에는 그를 힘들게 하는 악인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에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분깃이란 말은 보상, 혹은 몫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을 괴롭히는 악인들은 이 땅에서 얻은 것, 이룬 것에 만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받을 복을 다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걸로 자기 배를 채우고 자녀들에게 만족을 주고 그 남은 산업을 그들의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사람들입니다.
대신 다윗은 뭐라고 말합니까? 자기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겠다고 합니다. 그는 자기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귀, 자기를 지켜 보시는 하나님의 눈, 자기에게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의 입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나는 그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만족한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뭔가 더 잘 사는 것 같고 그 집 자녀들이 더 좋은 학교, 직장 다니고 많은 유산을 물려주는 것을 보면서 부러워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부유함, 하나님 없는 형통 보다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진짜 복이고 그게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에게 한 번 질문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당장에 부자가 되고 자녀들이 형통하게 되고 많은 재산을 물려 주는 것과 하나님의 약속 안에 거하는 것, 둘 중에서 어느 쪽에 더 관심을 갖고 있습니까?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 가정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든다면 어떤 이야기를 주로 담을 것 같습니까? 아마 어떤 이야기는 좀 더 과장해서 이야기 하고 싶을 거고 어떤 이야기는 숨기고 싶을 겁니다.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이야기, 실패한 이야기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야곱 가정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다 기록합니다. 성경은 이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지를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가정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죄도 심각했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훨씬 더 신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야곱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사람, 의인을 구원하러 오신 게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야곱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우리의 성공이나 우리의 특별함 때문이 아닙니다. 절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마음, 그런 우리를 위해서 생명을 바쳐 주신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 보다 좀 늦게 가는 것, 내가 원하는 때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 때문에 초조해 하고 불안해 하기 보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누리게 된 은혜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절망하는 대신에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 안에서 감사하며 사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양
기도
말씀을 기억하면서 기도합시다. 주님! 많은 것을 이룬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부끄러워하고 절망했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면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기억하면서 살게 해 주십시오. 우리 입에서 그 은혜로 인한 감사의 찬송이 계속되게 해 주십시오. 우리 이런 제목으로 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