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이어가는 믿음
창 24: 1-67
들어가면서
제 고향은 대구입니다. 제 아내의 고향은 전라도 여수입니다. 경상도와 전라도, 다른 고향 사람들이 만나서 결혼하기란 사실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는 이 아내와 결혼해서 35년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을 이어준 사람은 지금 몽골에 선교사로 가 있는 자매입니다. 이 자매는 IVF라는 선교 단체에서 저와 같이 활동했습니다. 어느 날 IVF 모임에서 기도 제목을 나누었는데 그때 제 기도 제목이 현숙한 여인을 만나는 거였습니다. 저의 기도 제목을 듣는 순간 이 자매에게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기숙사 룸 메이트였던 제 아내였습니다. 놀랍게도 기숙사 그 방에 있던 모든 사람이 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제 아내만 빼고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우리 두 사람을 연결시켜 주려고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그 결과 저희들이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 돌아보면 이건 수많은 연결 고리가 연결되고 연결되어서 결혼까지 이른 겁니다. 그 중에서 고리 하나만 빠져도 우리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 만일 아내나 내가 총신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더라면, 아내가 하필 그때 기숙사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그때 내가 그 선교 단체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 때 그 기도 제목을 나누지 않았더라면, 기도 제목을 나누었는데 그 자매가 아내를 떠올리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자매와 아내가 같은 기숙사 한 방을 쓰지 않았더라면.... 이 중에 한 가지만 안 맞았어도 우리는 못 만났을 겁니다. 수많은 우연과 우연이 겹치고 겹쳐서 결혼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 두 사람을 만나게 하셨다고 믿습니다.
성경을 보면 수많은 우연들이 겹쳐서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주관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사건이 많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팔아 넘겨 종이 되었고 이후에 누명을 뒤집어 쓰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뒤집어서 그를 총리의 자리에 앉혔습니다. 수많은 우연들이 이어진 결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 모든 상황 뒤에서 일하고 계셨던 겁니다. 심지어 요셉이 당한 고난 조차도 하나님께서 그를 총리로 세우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보이지 않게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하나님의 섭리라고 부릅니다. 온 우주를 질서정연하게 움직이시는 하나님께서 우주의 먼지에 불과한 것 같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아주 치밀하고 촘촘한 계획을 세우시고 이끌어 가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지난 주 말씀에는 사라의 장례식이 나왔는데 오늘 본문은 이삭의 결혼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중요한 약속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가나안 땅을 주겠다는 것이었는데 지난 주 말씀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라의 장례를 위해 막벨라 굴을 산 것이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한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또 다른 약속은 바로 후손에 관한 약속입니다. 일차적으로 그 약속은 이삭이 태어나면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삭 혼자서는 후손을 이어갈 수 없습니다. 그와 함께 후손을 잉태하고 출산할 아내가 필요했던 겁니다. 오늘 본문은 이삭의 결혼식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너의 씨를 통해 천하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어 가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나이 많고 늙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의 아내 사라는 이미 죽었습니다 자기보다 열살이나 어린 아내가 죽은 것을 보면서 140세였던 아브라함 자신의 죽음도 머지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그 후에도 35년이나 더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질 거라는 약속을 주셨는데,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려면 아들이 있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그 아들 이삭을 낳기까지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숙제가 생겼습니다. 아들만 있다고 믿음의 대가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며느리가 있고 손자가 있어야 믿음의 계보가 이어질 것 아닙니까? 아브라함은 아무 며느리나 맞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결혼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갈 신실한 며느리여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저주 받은 가나안 족속이 아니라 셈족 중에서 며느리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친족이 사는 하란 땅에 종을 보내서 며느리를 구해 오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명령이나 음성이 한 번도 안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란 말은 무려 18 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이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오늘 이 본문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구해서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 명의 등장 인물들이 있고 수많은 우연이 겹쳐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 일이 이루어지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이 나름 자기 역할을 감당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에 참여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그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하게 되었습니까?
1. 아브라함: 신뢰함으로 참여함
아브라함은 자기가 신뢰하는 종을 하란으로 보내서 그의 친족 중에서 며느리감을 찾아서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그는 가나안 땅에 살고 있었지만 가나안 땅의 여인을 며느리로 맞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발은 가나안 땅에 있었지만 그는 그 땅 사람들과 전혀 다른 가치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 땅의 문화는 한 마디로 말해서 우상을 섬기는 문화였습니다. 우상 숭배를 하는 사람들은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종교생활을 합니다. 내가 잘 되려고 우상을 섬기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자연스럽게 힘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 시대에 그 땅 사람들이 우물을 빼앗았던 이야기가 앞에 나왔습니다. 나중에 이삭 때에도 또 우물을 빼앗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야곱 시대에는 세겜 족속의 추장 아들이 야곱의 딸 디나를 강간하기도 했습니다. 힘으로 빼앗고 남의 정조를 짓밟는 것이 가나안 땅의 문화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이 아닌 자기 친족 중에서 며느리를 구하려고 하는 것은 이 땅에 발을 딛고 있지만 그 땅의 타락한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려고 하는 몸부림이었습니다.
특별히 그가 자기 종을 대하는 태도를 보십시오. 당시 종은 사람이라기 보다 물건이었습니다. 제퍼슨이 미국의 독립 선언서를 기초할 때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했습니다. 굉장히 유명한 말이었죠. 그런데 그때 그가 생각했던 모든 인간은 백인들이었습니다. 거기에 흑인들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250년 전까지도 흑인 노예들은 사람으로 취급 받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아브라함 시대에는 더 했겠죠.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당시 문화에서 물건 취급을 받던 종을 100% 신뢰하고 그 종에게 자기 며느리를 구하는 너무나 중차대한 일을 맡깁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살았지만 가나안 사람의 문화를 따르는 대신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았던 겁니다.
사실 성도들의 삶이 바로 이런 삶입니다. 발은 이 땅에 딛고 있지만 이 땅의 문화에 저항하고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남을 짓밟고 자기가 올라가려고 하는 이 땅의 문화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대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고 내가 죽음으로써 남을 살리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성도들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면서도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이 땅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기 때문입니다. 손해 보는 것 같고 바보 같아 보이지만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 그렇게 사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게 되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하란으로 종을 보낼 때 아브라함은 리브가라는 아가씨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브라함이 살던 헤브론에서 하란까지 직선 거리로 800km 정도 됩니다. 아마도 길을 따라 갔다면 약 1,000km 정도 되었을 겁니다. 낙타와 함께 그곳까지 가는데 약 한 달 정도 걸렸을 걸로 추정됩니다. 전화나 편지가 있던 시대도 아니니 그곳에 리브가라는 아가씨가 있는 걸 알 턱이 없었을 겁니다. 게다가 그곳에서 아가씨를 만난다고 해도 그 아가씨가 1,000km 떨어진 곳까지 따라오려고 할 지 안 할지 알 수도 없었습니다. 마치 서울에서 김서방 찾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종을 그곳까지 보내는 걸까요? 우리 같이 7절 읽어봅시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빨간 글자를 잘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생각이 뭡니까? ‘내가 아버지의 집과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할 때 아무 것도 알지 못했지만 내 삶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왔더니 하나님께서 기적같이 나를 인도해 오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이번 여행에도 하나님의 사자를 종보다 먼저 보내셔서 길을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게 아브라함의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면서 하루 하루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불안해 하거나 혼란스러워 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기 때문입니다. 온 우주의 별들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 때문인데 그 하나님께서 내 인생 가운데도 들어오셔서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기에 우리도 당당히 걸어갈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들어오셔서 이렇게 놀랍게 일하셔도 내가 그걸 믿지 못하고 늘 조마조마하고 불안해 하고 하나님께 나를 맡기지 못한다면 우리는 가장 놀라운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으면서도 늘 불안하고 늘 초조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께 완전히 나를 맡기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이렇게 종을 보냈던 겁니다.
2. 아브라함의 종: 기도로 참여함
두번째로 생각해 볼 사람은 아브라함의 종입니다. 이 종은 어떻게 하나님의 섭리에 동참했을까요? 그는 자기를 믿고 중대한 사명을 맡겨준 아브라함의 명령에 따라 무려 한 달이나 걸리는 먼 곳을 향해 떠납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하게 되었을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기도입니다. 그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하게 된 내용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선 그는 자기가 하란에 갔을 때 그 동네에 아가씨들이 많을 텐데 누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아브라함의 며느리감인지 알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기도했습니다. 우리 같이 12-14절을 읽어봅시다.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서 있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그는 하나님께 아브라함의 며느리감을 순조롭게 만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우물 곁에 있다가 물 길으러 오는 소녀들 중에서 물을 마시게 해 달라고 할 때 그 소녀가 물을 마시게 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데리고 간 낙타에게도 물을 마시라고 한다면 그 아가씨가 바로 이삭의 아내가 될 사람임을 알겠다고 한 겁니다. 이건 어떤 관점에서 보면 마치 기드온이 양털에 이슬이 맺히는 걸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하는 것과 비슷해 보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종은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갈 이삭의 신부감의 조건을 확인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을 보면 친절함, 섬김, 환대, 근면함 같은 조건을 확인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낙타 열 마리에게 물을 먹여 주었다고 했는데 낙타 열 마리에게 물을 먹이려면 적어도 수 백 리터의 물이 필요했습니다. 리브가는 단순히 착한 사람이 아니라 언약을 이어갈 이삭의 아내로서 너무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이 종이 기도를 채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을 길으러 우물에 온 겁니다. 그런데 그 소녀를 보니 아름답기도 했고 남자가 가까이 아니한 처녀였습니다. 그래서 그 소녀에게 물 좀 마시게 해달라고 했더니 그가 기도했던 대로 물을 마시게 할 뿐만 아니라 낙타에게도 물을 마시게 해 주었습니다. 종은 자기가 기도한 데 대한 응답을 받은 겁니다.
하나님은 한 순간도 쉬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은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그냥 어떤 일이 우연히 일어났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표현을 빌리면 재수가 좋았다. 재수가 없었다 정도로 자기 인생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한 사람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서 너무 생생하게 일하심을 믿게 될 것입니다. 기도는 우주의 먼지같은 우리가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하는 너무 소중한 통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우리의 크기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간에 때로는 홍해가 갈라지게도 하시고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게도 하시고 반석에서 샘물이 솟게도 하실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 크기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3. 리브가 : 결단함으로 참여함
세 번째로 살펴볼 사람은 리브가입니다. 리브가는 어떻게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하게 되었을까요? 우선 그녀는 아브라함의 종을 환대했습니다. 긴 여행을 마친 낙타는 한 번에 약 100리터의 물을 마십니다. 낙타 10마리면 거의 1톤 가량의 물을 마시게 됩니다. 리브가가 낙타 10마리에게 물을 마시게 하기 위해서 우물 계단을 수 십 번 오르내리며 물을 퍼 올리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녀는 온 맘을 다해서 나그네를 환대했습니다. 나그네를 환대한 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공통점입니다. 아브라함이나 롯이 천사들을 환대했던 것처럼 리브가도 아브라함의 종을 환대했습니다. 힘이 지배하는 가나안 땅의 문화와는 전혀 다른 하나님 백성의 삶을 보여준 것입니다. 나중에 아브라함의 종이 자기가 왜 이 곳에 왔는지, 그리고 그의 기도가 어떻게 응답 되었는지 리브가의 가족에게 말하면서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로 데리고 가고 싶은데 당신들 생각은 어떠냐고 물어봅니다. 그때 리브가의 오빠였던 라반과 아버지 브두엘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자기들이 가타부타 할 수 없고 리브가의 뜻이 중요하다가 말합니다. 그 때 리브가는 그 종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만 믿고 미지의 땅으로 갔던 것처럼 리브가도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가겠다고 했던 겁니다. 리브가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하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믿음의 결단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에 참여하게 된 겁니다. 낯선 땅, 한 번도 안 가본 땅, 심지어 결혼할 사람 얼굴도 모르면서 그녀는 떠나기로 했습니다. 며칠 더 묵었다가 갔으면 하는 가족들의 바램을 뒤로 하고 기꺼이 결단하며 떠난 것입니다. 리브가는 이삭이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도 몰랐지만 아브라함의 종을 통해서 들은 대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자기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았을 때 낯선 곳을 향해 기꺼이 결단하면서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 결단을 통해 리브가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겁니다.
4. 이삭: 기다림으로 참여함
마지막으로 이삭을 살펴봅시다. 이삭은 자기 아내를 구하는 일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잠잠히 기다렸습니다. 리브가가 한 달 동안 1,000km를 달려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 이삭은 해 질 무렵 들판에서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묵상했다는 말을 어떤 번역본에서는 기도했다라고 번역했고 어떤 번역본에는 묵상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의 자리, 그리고 가문의 미래를 짊어지느라 무거워진 어깨, 그리고 이제 곧 결혼할 미지의 여인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묵상하며 기도했을 겁니다. 그는 인간적인 조급함으로 요동치지 않고 묵묵히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렸습니다. 그가 그렇게 기도하며 묵상하고 있을 때 저 멀리 석양을 등지고 낙타 떼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 눈앞에 가장 소중한 선물 리브가가 도착했던 것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자기 집 종을 통해 일하실 것을 믿고 잠잠히 기다렸습니다. 때로 믿음의 사람들은 리브가처럼 능동적으로 결단하기도 하고 이삭처럼 믿음으로 기다리기도 하는 겁니다. 결국 이삭과 리브가가 만났고 이제 리브가와 이삭이 결혼하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을 보면 수많은 우연과 우연이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말 없이 일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종, 리브가와 이삭은 모두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했고 하나님의 일하심에 각기 자기 방식 대로 참여했습니다.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이어져 온 하나님의 언약은 이제 리브가를 만나 야곱을 낳고 나중에는 다윗으로 이어졌다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어집니다. 아브라함에게 너의 후손을 통해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라고 했는데 마침내 그리스도에게서 약속이 성취됩니다. 그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가신 것입니다. 이 때 믿음의 사람들은 각기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에 참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을 하나님은 끝까지 지키셨고 그 결과로 우리도 아브라함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많은 교부들과 신학자들은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을 종종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가 결혼하는 것을 예표하는 모델로 해석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을 거쳐 마침내 언약을 성취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신랑이 되고 우리는 그 분의 신부가 되는 놀라운 영적인 결혼이 성사된 겁니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어떻게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만났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에 수많은 스토리가 있을 겁니다. 누군가의 간곡한 권면이 있었던 사람도 있을 거고 부모님의 믿음을 계승한 분도 있을 겁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한 분들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진짜 우리와 그리스도가 결혼할 수 있게 하신 분은 말 없이 우리의 삶 한 가운데 들어와 언약을 지키신 하나님의 일하심 때문인 줄 믿습니다.
결론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서 내 귀에 들릴 정도로 선명하게 말씀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의 눈을 열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살펴보면 놀랍게도 하나님은 늘 내 곁에서 일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하나님의 일하심에 참여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지 못하거나 단순한 구경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기도하면서 때로는 기꺼이 결단하고 때로는 믿음으로 기다릴 때 하나님의 일하심에 우리도 동참하게 되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하나님의 놀라운 일하심에 참여하는 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